






엄마의 칭찬
생각해보면 나한테 잘했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밖에 없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내가 바깥에서 다치거나 울면서 들어와도 항상 잘했다고만 했다. 딱히 이유 없이 그랬다. 고등학교 때는 나의 고민과 불안에 대해 해답이 안나오는 엄마의 이런 태도에 짜증도 났었다.
요즘 사무실에 앉아 있다보니 여러 사람과 뒤엉켜 이런 저런 일에 칭찬도 받고, 의도 없이 욕도 많이 먹게 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했던 칭찬은 누군가 내 직책을 불러 어떤 일을 부탁하고 나서, 내가 기대에 충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 너에게 조금 더 부탁 한다'라든지, '너의 배려 덕분에 나의 수고를 덜었으니 고맙다'에서 출발한 그런 종류의 칭찬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칭찬은 다만 나를 이해하고, 결국엔 내가 어떻게 할지를 잘 알기 때문에 주는 대답이었고, 여전히 그런 시선이다. 마치 이제 막 걸음마 뗀 아기를 몇 발자국 앞에서 기다리는 것처럼, '네가 살아있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나에겐 기쁨이다. 그러니까 넌 잘했다.' 이런 해석이다. 앞의 건조한 그것과는 비교 불가능한 가치다. 격려로 위장한 사랑이다.
단지 알량하지 않으면 나도 엄마가 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칭찬할 수 있다. 나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어떤 것을 받았을 때만 고마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난 누군가에게 격려로 위장한 사랑을 보낸 적이 있나. 가끔 난 나와 다른 사람한테 무리하게 나만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오류는 항상 시간이 지나서 그 때의 환경, 사람들, 계절이 재생 불가능하게 나와 헤어져버리고 나면 홀가분함 뒤에 내가 모자랐고, 못했던 것만 생각나게 한다. 조금만 더 잘하자.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에게도.
Cristiano Ronaldo dos Santos Aveiro
‘그라운드의 댄서에서 최고의 남자로’ - moleskine.egloos.com

- 프롤로그
- 최고의 선수
- 결국 선수는 멘탈
- 최고의 남자
- 그의 과제
프롤로그
현 시점에서 호날두는 최고의 축구선수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최고의 남자'다. 포르투갈의 가난한 섬에서 태어나 축구로 자수성가해 축구계의 별들을 모으는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정책 하에 160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입성하는, 만화영화 ‘축구왕 슛돌이’에서도 보지 못한 이야기를 그는 만들어냈다. 그런가 하면 그라운드 바깥의 행동을 비롯해 그의 사생활 역시 언론에게, 팬들에게 최고의 뉴스거리가 된다. 어쩌면 갈락티코라는 말 자체가 호날두 같은 스타플레이어만이 수식 받을 수 있는 영광의 단어가 아닌가 싶다.
그라운드에서의 강한 압박과 태클에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 극성인 영국 언론의 끝없는 추측성, 가십성 기사에도 본인의 소신을 잃지 않고 일관된 대답을 해온 것을 보면 멘탈적인 부분에서도 분명 좋은 선수다. 비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에게는 그것이 좋지 않게 보였을지는 몰라도, 호날두는 누차 밝혀왔던 본인의 소신대로 레알 마드리드에 입성했다. 이제 그의 이름은 과거 비슷한 길을 밟았던 또 하나의 포르투갈산 날개 루이스 피구를 무색케 한다. 기록으로 봐도, 실력으로 봐도 그는 현재 세계최고의 축구선수이며, 축구 외적인 부분을 보면 최고의 남자이기도 하다.

- 최고의 선수
호날두가 젊은 나이에 다수의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커리어를 쌓기까지, 선수에게 주어지는 각종 상을 휩쓸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까지 6년을 몸담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역시 레알 마드리드 못지않게 훌륭한 구단이고, 베컴의 7번을 물려받은 호날두는 근 몇 년 동안 팀의 에이스로 활약, 퍼거슨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득점 루트에서 항상 중심에 있었다. 그 팀이 추구하는 전술에서 호날두라는 선수가 수혜를 입은 것은 분명하지만 팀의 에이스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사랑하는 박지성이 그 자리에서 호날두 만큼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비단 박지성 뿐만 아니라 어떤 선수도 힘들 것이다. 호날두의 이적 건에 대한 박지성의 말처럼 그를 대신할 선수는 없다. 호날두는 그것을 가능케 했고, 또 믿을 수 없는 수치로, 기록으로 증명시켰다.
현대 축구에서 팀의 주효한 득점루트를 만드는 선수들은 상대 수비수가 과감한 디펜딩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교묘한 드리블과 엄청난 탄력에서 나오는 빠른 돌파를 구사한다. 다시 말해, 이런 플레이가 현대 축구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이다. 그 중에서도 강한 피지컬과 빠른 경기 운영이 두드러진 EPL은 지난 3시즌 동안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만 3팀씩을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고, 또 그런 피 튀기는 경쟁에서 맨유가 항상 선두를 질주했다는 것엔 이견이 힘들 것이다. 그렇게 지난 몇 시즌, 맨유의 해법은 결국 호날두였다.

윙 플레이어가 상대편의 필드를 갉아먹고 빈 공간을 대체해주거나, 그렇게 얻은 공을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크로스를 올려주면 타겟맨이 어떻게든 비비적거려 골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공격 방법이었다면, 현대 축구의 전술에서는 앞의 획일한 템포보다 약간 변형된 엇박자를 추구한다. 재즈 텐션 같다고 할까.
최전방 무한 스위칭에 가까운 유기적인 전술은 맨유를 EPL 최강팀으로 만들어줬고, 앙리-에투-메시의 삼각 편대와 이니에스타, 사비의 창조적인 플레이는 바르셀로나를 유례없는 최강의 팀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현대축구에서는 전술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출발 선상은 다를지 몰라도 공격상황에서 선수들의 역할은 모두가 타겟맨이고, 상대의 역습상황에선 모두가 수비수가 될 수 있어야한다. 명칭은 윙 포워드지만 사실상 전방 프리롤을 담당하는 팀의 에이스들이 이런 전술의 수혜자이며 공격의 해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호날두가 정말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맡은 포지션 이상의 능력을 수행해내기 때문이다. 그에게 탑재된 첫 번째 옵션-천부적인 헤딩과 두 번째 옵션-무회전 프리킥은 그를 단순한 윙어 이상으로 만든다. 수많은 폭격기들이 있지만 호날두처럼 빠르고 강한 헤딩을 구사할 수 있는 선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반 니스텔로이의 이적 후 타겟맨의 부재였던 맨유에게 호날두의 뛰어난 헤딩은 분명히 매력적인 옵션이었다. 여담이지만 07-08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AS 로마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보여준 호날두의 플라잉 헤딩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그런가하면 현대 축구의 또 다른 산물, 골키퍼를 바보로 만드는 무회전 프리킥은 그의 부전공이다. 프리킥의 마법사 베컴이 나가고서도 좋은 킥을 구사하는 긱스나 루니가 있었지만 호날두처럼 먼 거리에서 직접 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그의 무회전 킥은 각 리그에서도 손꼽을 수 있는 일품이다. 다른 선수들이 주특기 외에 옵션을 보유하고 있다면 호날두는 머리의 헤딩, 다리의 발재간, 발끝에서 나오는 프리킥이 모두 전공이고 섹시한 상체가 옵션인 정도다. 게다가 상대 수비수의 온몸에 땀이 나게 만드는 힐패스, 허벅지슛과 같은 본능적인 축구 센스나 08-09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FC 포르투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아주 작정하고 쏜 초강력 중거리 슛은 결코 그가 운이 좋아서가 아닐 테다. 말 그대로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댄싱 머신이다. 과장이 아닌 것이 07-08 시즌 후반부엔 상대팀 수비수들이 그의 댄스 몇 번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머리와 다리, 왼발, 오른발을 가리지 않은 골은 윙어인 그를 득점왕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호날두는 FIFA 올해의 선수상, 발롱도르 상을 수상했다.

Q :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맨유에서 오랜 기간 뛰었습니다. 퍼거슨 감독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CR :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저는 맨유에서 여섯 시즌을 뛰면서 퍼거슨에게 수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절대로 잊지 못할 가르침을 퍼거슨은 저에게 주었기에 저는 언제나 그를 존경할겁니다. 그와의 관계 또한 변함없이 좋을 겁니다.
- 결국 선수는 멘탈
조금 더 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요즘 운동장에서 공차는 일곱 살짜리 꼬마아이도 그를 안다. 화려한 개인기와 뛰어난 실력 때문이다.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는 여대생들도 그를 안다. 수려한 외모와 스포츠 뉴스에서 상위권을 자랑하는 기사들 때문이다. 물론 기사엔 축구에 관련한 소식이 주가 되겠지만 호날두에겐 예외다. 그라운드 바깥에서 보는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기사화된다. 극성적인 영국 언론이 비단 호날두에게만 국한해 기사를 만들지는 않지만, 그가 가끔 하는 폭탄발언은 ‘더 선’과 같은 타블로이드에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설이 흘러나올 때쯤 이적에 대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호날두의 발언은 올드 트래포트의 관중들을 분노케 만들었고 그 후로 그는 경기 중 홈팬들에게 엄청난 야유를 들어야했다. 맨유를 위해선 무상으로도 뛸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맨유를 떠났지만 여전히 맨유를 사랑하는 레전드, 동료이자 선배이며 팀의 충실한 기둥인 긱스, 스콜스와 그를 비교한 기사들은 호날두를 뜨거운 감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가끔 신문의 타이틀에 자극적인 문구가 실려도 막상 인터뷰 전문을 보고 있으면 그냥 자신감 넘치는 대답일 뿐이지, 그렇게 문제 될 내용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있었던 레알 마드리드 입단식에서 호날두는 프리메라리가와 프리미어리그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스타일의 차이로 EPL은 템포가 빠르고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프리메라리가가 우세한 것 같다고 한 대답이, 그 다음 날 헤드라인에 ‘프리메라리가가 EPL보다 한 수 위’라고 뜬 것 보면 말 다했다. 그럼 프리메라리가 가서도 EPL이 짱이라고 할까?
사실 최고의 선수가 좋은 팀에서 뛰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또한, 선수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꿈꿔온 클럽에서 뛰는 것 역시 당연하다. 물론 한 팀에서 오래도록 뛰어온 긱스, 푸욜, 말디니 같은 팀의 상징들이 있지만 이들과 다르게 호날두는 어렸을 때부터 레알 마드리드를 동경해왔으며, 맨유에서 큰 선수로 성장했어도 결국 떠나야할 클럽이었다. 더군다나 호날두는 소속팀에 사상 최고액의 이적료를 선사하고 이적했으니 구단의 입장에서 보자면 더할 나위가 없다.

과거 현역시절 경기 도중 박치기까지 한 지단에게는 잔디 위의 발레리노라는 칭호를 수여하면서 이적에 대해 자신의 뜻을 발언한 호날두에게 야유를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두 선수 다 좋은 선수들임에도 틀림이 없다. 그라운드 위에 일어나는 선수들의 크고 작은 마찰에서 극히 일부만을 카메라로 볼 수 있다는데, 라틴 출신의 선수가 경기 도중 강한 압박이나 상대 팬들의 야유에도 여유 있는 웃음과 보란 듯이 더욱 화려한 개인기로 응수하는 것은 오히려 배짱이 두둑해 보인다. 또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명장 퍼거슨 감독은 선수들을 독려, 이적설에 관계없이 꾸준히 신뢰하며 호날두를 감쌌고, 이에 호날두는 좋은 성적으로 대답했다. 한편으로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주장 완장까지 차게 된다. 이것은 곧 선수로서 훌륭한 멘탈과 스타성을 반증한다.

Q :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알려주면서 마드리드의 팬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CR : 쉽지 않은 문제네요. 마드리드는 특별한 클럽이지만 바르셀로나 역시 위대한 클럽이니까요. 그러나 그 특별함에 있어서 나에게는 마드리드가 우위입니다. 난 그 아이에게 마드리드는 정말 꿈과 같은 축구팀이라고 말하겠습니다.
Q : 프리메라리가와 프리미어리그의 차이를 이야기하신다면?
CR :아주 큰 스타일차이가 있어요, 프리미어리그는 아주 빠르지만 프리메라리가는 아주 기술적이에요. 단, 리그간의 실력차는 프리메라리가의 손을 들겠습니다. 반대로 심판은 프리미어리그 심판이 더 우위라고 봅니다. 프리미어리그 주심들은 정말 공정하지만 프리메라리가 주심들은 정열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더군요!(웃으면서)
- 최고의 남자
현재 바르셀로나의 ‘메시’와 얼마 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카카’를 비롯해 뛰어난 선수들이 많이 있지만, 호날두는 그들이 가진 것과 다른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가 하는 입방정에 가까운 용기 있는 발언, 섹시한 외모, 화려한 여성편력은 그를 최고의 남자로 수식하게 만들어 경기장 바깥의 팬들을 매료시키고, 그렇게 경기를 보러 온 팬들에겐 화려한 플레이로 대답한다. 더불어 그는 가장 비싼 남자다.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1600억이라는 이적료는 호날두의 말처럼 최고의 선수에게 합당한 금액이리라. 돈 있는 구단이 최고의 선수를 영입해 마음대로 경기를 운영하는 것이 플라티니 UEFA 회장의 말처럼 축구계에 썩 좋지 않을 수 있지만, 선례로 1기 갈락티코가 이름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아주 비싼 교훈이었다. 최고의 선수가 전부는 아니다. 어쨌거나 과거 데이비드 베컴의 이적료를 그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만 팔아서도 충당할 수 있었다는 구단의 낭설 아닌 말처럼 그는 그럴 자격과 가치가 있는 선수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바로 '스타'이기 때문이다. 현재 카카와 호날두는 명실상부 각 포지션 세계 최고의 선수임에 이견이 없는데, 적지 않은 이적료의 차이는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서 말했지만 축구와 관계없이 뛰어난 외모, 폭탄에 가까운 발언과 사진으로도 증명된 스캔들은 그에게, 구단에게 또 다른 티켓파워를 선사한다. 일례로 불과 며칠 전 있었던 카카와 호날두의 입단식에 온 관중 인원의 차이는 이것을 증명한다. 더불어 축구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굳이 예를 들자면 ‘유럽의 섹시가이’, ‘게이들이 가장 사귀고 싶은 남자’ 같은 통계에서도 그는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그의 가십과 섹스스캔들은 스포츠를 비롯해 연예면에서도 뉴스거리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또 다른 축구스타, 미국에 진출한 데이비드 베컴을 통해서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만큼 축구 외적으로도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젊은 나이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운동선수가 되었다.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운동선수 중 한 명이다. 또한 그는 술도 좋아하고 여자도 가까이한다. 같은 포지션의 다른 선수, 나와 한국이 사랑하는 박지성이 ‘축구를 잘하고 싶지만 유명해지기는 싫다’고 한 소신과는 상반되게 호날두는 스포트라이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는 것 같다. 아침에 교통사고가 나서 페라리가 박살나면 벤틀리를 끌고 출근한다. 동료들과 감독의 눈치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면 현대사회에선 능력이 최고니까. 근무시간엔 최고로 열심히 일하고, 휴일엔 최고로 화끈하게 논다. 일을 하면 스포츠뉴스에, 예쁜 여자들과 놀면 연예뉴스에 나온다. 머리에 꽃을 꽂고 핫팬츠를 입어도 멋지다. 최고의 남자다. 이 어찌 아니 부러울 수 있겠는가.

Q : 카카와 당신은 축구장 밖에서 굉장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축구장 밖에서의 관계는 어떤가요?
CR : 아주 좋아요. 사실 카카가 이런 질문을 받았어도 나와 같은 대답을 했을 것 같습니다만, 적어도 그와 나는 좋은 친구라는 것이죠.
- 그의 과제
이제 Ronaldo라는 글자를 보면 브라질리언 호나우두보다 포르투갈산 날개 호날두가 떠오른다. 9번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장래희망을 이루지 못하고 중년을, 노년을 보내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젊은 나이에 이미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뛰고 싶었던 클럽에서 뛰게 되었다. 이례적으로 소수의 축구선수들에게만 축복된 엄청난 숫자의 여성팬도 확보하고 있지만 그에게도 과제가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호날두에게 9번이라는 숫자를 줬다. 과거 축구의 황제 ‘호나우두’의 등번호와 같다. 더불어 이름도 같다. 구단의 입장에서 본다면 황제 호나우두와 같은 플레이를 펼치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일 수 있고, 팬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Ronaldo라는 센세이션의 부활이다. 이제 팀의 동료가 된 카카는 등번호 5번을 주겠다는 구단의 뜻에 지단은 위대한 선수지만, 자신은 자신이라고 했다. 레전드와의 끝없는 비교를 미리 피해간 것일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킨 것일까. 어떤 측면이 된다고 해도 그의 엘리트다운 면모와 멘탈은 그가 사상 최악의 ‘먹튀’로 전락하지 않는 이상 빛을 발할 것이다.
하지만 호날두에겐 다르다. 그는 축구 황제 호나우두의 등번호를 받았다. 더군다나 이름도 같다. 다소 거만하다고 할 수 있는 그라운드 바깥의 모습 때문인지 축구황제 호나우두의 이름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갖다 붙이지 말라는 오랜 국내 해외축구팬들의 의견도 있지만, 이미 유럽의 축구팬들은 그를 과거 호나우두의 애칭이었던 ‘로니’라고 부르는데 거리낌이 없다. 이례적으로 입단식을 기록한 8만의 대관중, 또 레알 마드리드의 서포터를 비롯해 전 세계 축구팬들은 그를 주목한다. 허나 동시에 이런 관심은 독이 될 수 있다. 언론과 팬들은 이미 과거형이 되어버린 축구황제 호나우두의 짐을 분명 그에게 올리려 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그의 배짱 있던 모습은 이런 비교를 겸손히 피해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의 작지 않은 딜레마는 크게 보면 EPL과 프리메라리가의 자존심 대결이기도 하다. 이미 근 몇 년간 챔피언스리그 진출 성적을 두고 축구팬들 사이에선 EPL이 곧 축구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바르셀로나가 아름다운 축구로 그것을 잠재웠지만, 그 전에 첼시와의 경기에서 꺼림칙한 승리를 거둔바 있다. 어떻게 보면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정책은 EPL과 프리메라리가 사이의 패권을 다투는, 보이지 않는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스타플레이어에 열광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축구에 매료된다.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의 스타플레이어 정책은 어떻게 보면 축구의 기업화와 상품화의 정점이라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1기 갈락티코는 기대만큼 큰 성적을 만들지 못했고 레알 마드리드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세월이 흘러 2기 갈락티코의 출범이 눈앞이다. 일부 팬들은 과거 지구방위대 시절 레알 마드리드의 위용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단언하지만 천문학적인 이적료의 스케일 면에서는 단연 2기 갈락티코가 우세하다. 또한 레알 마드리드는 카카와 호날두, 벤제마의 영입을 확정짓고도 몇 명의 스타급 플레이어를 더 원한다고 밝혔다. 결과야 어찌됐든 가히 게임과도 같은 선수 영입에 축구팬들의 눈은 즐거워도, 레알 마드리드와 갈락티코 선수들은 시험대에 올라야한다. 더군다나 그 시험에서 가장 까다롭고 배점 높은 문제는 아름다운 축구를 구사하는 바르셀로나다. 그들의 가슴엔 상업적인 스폰서 대신 아이들을 위한 유니세프가 박혀있다. 아름다운 축구를 한다는 명분도 분명하다.
그런 시험대의 중심에 서있는 레알 마드리드가 부활을 선포하며 비싼 돈을 주고 사온 신무기가 바로 호날두다. 비싼 무기는 제 값을 해야 한다. 그는 이제 황제 호나우두 같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프리메라리가에 적응해야한다. 이제 프리메라리가 팬들은 과거의 EPL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가 수비수를 한 명 재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매 경기 기복도 없어야 손가락질을 안 한다. 페예그리니가 뛰어난 감독이지만 퍼거슨처럼 자신의 선수를 아끼며 팬들의 야유도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비야 레알에서 팀의 간판스타였던 리켈메도 내쳤다.
하지만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말한다. 화려한 말빨은 필요 없다. 비난도, 조롱도 선수의 실력 앞에선 무의미하다. 앞서 말했지만 호날두는 지금 세계최고의 선수다. 자신만만하다. 그는 이제 맨유에서 황홀했던 시간을 지나 또 다른 도전을 했고 곧 시험대 앞에 선다. 안철수가 의사에서 개발자로, 개발자를 넘어 CEO, 또 그것을 버리고 강단에 서기까지 그는 매번 힘겹고도 아름다운 도전을 했다. 사람들은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겸손하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은 잘못된 잣대다. 겸손하고 말고는 그 사람 몫이다. 자신이 있고,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거만도 용서할 수 있다. 그게 더 멋져 보이는 시대다. 여자 앞에서 용감한 남자가 멋있다. 호날두는 지금까지 나왔던 선수들과는 다른 선수다. 나르시스트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가 조금 더 멋진 모습으로 뛰기를 응원하고, 그 모습을 본받는 것이다. 나는 그를 응원하겠다. 나르시스트 호나우두, 그라운드를 누벼라.

Q : 어느 포지션을 선호하나요? 전방? 아니면 측면?
CR : 거의 대부분 측면에서 뛰어왔지만 최전방도 사실 나쁘지 않아요. 어디서든 자신 있습니다.
Q : 파파라치에 대한 걱정은?
CR : 전혀 하지 않습니다. 축구만 열심히 할 겁니다.
Q : 라이벌 바르셀로나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그들에게 맨유에서 당한 복수를 하고 싶으세요?
CR : 전 복수란 단어를 사실 믿지 않아요, 그러나 바르셀로나만큼은 정말 이겨보고 싶습니다.
Cristiano Ronaldo dos Santos Aveiro

경력
2009.06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2006 제18회 독일 월드컵 포르투갈 국가대표
2003. 8.~2009. 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2003 포르투갈 국가대표
2002~2003 포르투갈 U-21 청소년대표
1999~2003 스포르팅 리스본 (포르투갈)
수상
2009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
200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어워즈 올해의 골
2008 UEFA 올해의 선수상, 최우수 공격수상
2008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2008 국제프로축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
2008 발롱도르(Ballon d’Or)상
2008 옹즈 도르(Onze d'Or)상
2008 유로피언 골든 슈
2008 잉글랜드 축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
200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2007 잉글랜드 축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 올해의 영플레이어상
2006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 팬선정 신인왕
2006 포르투갈 올해의 체육인상
참고
EPL 위성중계 시청
해외축구 관련 각종 인터넷 뉴스
네이버 카페 ‘정열과 낭만의 스페인 축구’ - 레알 마드리드 입단식 오피셜 인터뷰
문화혁명 블로그 이근형 - 3류 축구 칼럼
네이버 인물 정보
사진
UEFA.com
레알 마드리드 공식 홈페이지

첫사랑에 대한 짧은 생각
중학시절 다니던 학원. 어느 날 사회선생님은 새로 산 나의 문제집에 내 이름을 적어주셨다. 또박한 글씨였다. 이름을 써주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무심코 고개 숙인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봤는데, 아직도 그 장면은 256컬러 동영상으로 무한 재생, 내 의식/무의식 이성관은 그 때 결정되었던 것 같다. 그 때 선생님의 아름다움은 또래 여자아이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고, 나는 그 날 이후로 그 선생님을 좋아하기로, 아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인기가 많았던 사회선생님에게서 이름을 쓰임 당하는 영광을 받은 사람은 내가 중학교를 졸업해 학원을 그만 둘 때까지, 우리의 졸업보다 보다 훨씬 일찍 선생님이 학원을 그만 둘 때까지, 나뿐이었다. 그 때의 나는 16살. 나보다 6살 많았던 사회선생님은 22살이었다. 내가 반했던 한 여자의 모습은 짧은 감상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보다 앳되고 어리다.
고등학교 땐 이성을 좋아하는 감정을 잘 몰랐다. 옆 여학교 교문에서 걸어 나오는 여자아이들의 눈빛과 큰 웃음소리는 남학교를 다녔기 때문인지 고민 많고 쑥스러웠던 나에겐 이성이라기보다 불안에 가까웠고, 친구들이 학업과 일상을 불문하고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쉴 새 없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동안 나는 영화에, 음악에 어쭙잖은 관심이 쏠려있었다.
고등학교의 좋은 기억은 이렇게 짧다. 어설픈 아름다움으로 포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닭장 같던 고등시절보다는 게임 아이템 하나가 더 걱정스러운 중학생이었던 내가 더 좋다.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 나는 나이로 청년이다.
꼭 연애를 시작해야 첫사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처음 좋아해봤으면,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 그게 첫사랑이다. 어떻게 보면 첫사랑은 추억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광범위한 명제가 아닐까도 싶다.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는 단순히 주체가 향한 사랑의 대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재생 불가능한 사건과 환경, 그리고 과거의 자신도 포함시킨다. 그래서인지 시도 때도 없이, 때로는 한참을 잊은 듯 하다가도 첫사랑은 생각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항상 첫사랑이어야만 성립하지 않을까. 그 때의 나, 지금의 나는 다른데. 나에겐 그 때 만난 여자, 앞으로 만나게 될 여자도 다를 거다. 처음 좋아했거나, 사랑했었던 사람을 단지 편의에 의해 첫사랑이라고 과거화 하기엔 그 때의 사건으로 내가 지니게 된 좋은 기억들이 너무 아깝다.
청년이 되고나서 품은 마음들이 화석이 된 나의 중학시절 첫사랑보다 오롯하고 순수할까. 중학시절 처음 누군가를 좋아했던 소년의 마음이 청년이 되고 누군가를 향했던 마음보다 더 강렬했을까.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은 그런 아쉬움들을 알고서 앞으로 그 단어를 되뇌일 자신에게, 그리고 그 다음의 사람들에게 그리움의 향을 더욱 짙게 만들어주기 위해 지나간 사랑을 말하듯 지극히 현재 시점의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그려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첫사랑은 그 선생님이 나를 보고 돌아앉았던 불편한 의자에도, 7천원짜리 문제집에도 묻어있다. 그 이후의 사랑도 그런 것 같다. 그 사랑의 주체는 그 때 처음으로, 지금도 여전히, 바로 ‘나’다. 그리고 그것을 확신하면 그리움보다는 아름다움이 앞서 결국 나를 따뜻하게 만든다.
2009년 6월 9일

여성 영화, 여성 운동 등 컴플렉스에서 반사된 여성이라는 단어와 개념에 그다지 특별하게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자신이 사랑의 주체가 되어간다는 점에서는 동감이 많이 가는 영화들이다. 현실을 3자의 시선으로(여자, 정혜), 비현실적인 비주얼이지만 가장 설득력을 지닌(파니핑크), 비극적인 설정을 아름다운 동화로(아멜리에), 동화에 풍자된 치졸한 현실극(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이라는 점에서 공통점, 차이점, 공이점은 분명하다.
네 명의 여자들이 장애든 환경이든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사랑에 있어 장애자가 됨은 공통점이다. 정혜는 있어선 안 될 유년 시절의 기억 때문에, 수동적이기만 했던 사랑 방식 때문에 아무도 좋아해주지 않는 노처녀 파니핑크, 외톨이였던 아멜리에, 누구에게도 진실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던 마츠코.
하지만 극 중 하얗게 묘사되는 정혜의 장애는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는 점에서 잔혹한 어둠이고, 집과 직업, 친구 등 모든 것을 가진 노처녀 파니의 핵폭탄 맞는 것보다 힘든 사랑 찾기는 국가를 불문한 우리의 현실이다. 언제나 외톨이기만 했던 사랑의 전령사 아멜리에, 가장 고통스러운 일대기의 주인공 마츠코까지 네 명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유럽의 두 여자 파니와 아멜리에는 누군가의 사랑을 이뤄주지만, 파니는 오르페오와 사진수프(?)를 먹어야했고, 아멜리에가 행복을 나누는 법을 택했지만 사이코적 집착을 보이는 것은 공이점이다. 정혜와 마츠코가 남성에 의해 파괴된 여성이라는 것은 같지만 정혜는 그 사건으로 인해 남자를 사랑할 수 없게 되었고, 마츠코에 대한 끊임없는 여러 남자의 사랑은 그녀를 항상 궁지로만 몰아넣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파니와 정혜가 모든 것을 갖춘 여성이지만, 파니는 사랑을 갈구하고, 정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가정이 파괴된다는 것은 같지만, 사랑을 찾아나선 희극의 아멜리에와 계속해서 남자에 의해 파괴되는 마츠코의 일생은 비극이다.
주섬주섬 묶은 네 여자의 이야기 모두 본 지가 조금 지나서 지금은 다를 수도 있겠는데 파니핑크의 이야기가 재밌었다고 나는 기억한다. 남자, 철수라든지 하는 제목으로 남성의 무게와 고독을 비춘 영화가 있으려나하고 찾아봤는데 내가 못 찾은 건지 없는 것 같다. 하긴 그런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줄 관객(남자)은 없을 테고, 그런 무거움은 동화가 아니라 현실이니까. 그건 인간극장에서도 나오니까. 우리 아빠한테서도 볼 수 있으니까.
2009년 5월 20일

당신은 축구를 좋아하는가? 섣불리 대답했다간 일처다부제에 동의하는 꼴이 된다. 아니라고? 어디 한 번 태클해봐라. 하지만 넘어지는 태클은 공을 뺏는 확실한 방법이 아니라 찍기다. 선수를 넘어트려봐라. 레드카드가 기다린다. 이 발칙한 소설을 차마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축구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개념이 보여주는 증명 때문이다. 말 그대로 나와 결혼한 아내의, 두 남자를 사랑하겠다는 이 미친 여자의 말을 거부할 수 없는 사정은 나 역시 미쳐서가 아니라 아내가 하는 말들이 가만있는 공을 발로 차면 멀리 튕겨 나가듯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볼은 항상 아내가 가지고 있다. 나는 그라운드 주변의 사람이다. 당신은 어떻게든 선수가 되어 경기에서 이길 텐가. 심판이 되어 게임 도중에 몰수패 시킬 텐가. 선택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재치 있고 현란한 아내의 드리블에 주인공은 끝없는 태클을 한다. 용케 이 녀석도 넘어지지 않고 어떻게든 막아보려 하지만 아내는 절대로 공을 뺏기지 않는다. 오히려 공을 질질 끌고 골대로 간다. 한없이 많은 그라운드의 이미지들과 선수들의 말에 동감하면서도 우리는 발칙한 소설 내용이 가지고 있는 진리를 통감해야만 한다. 아내의 레드카드를 받지 않는 선에서 태클해야하는 사람이 과연 소설의 주인공 하나뿐일까. 결혼에 대한 생각은 아직 접어둬도 상관없는 내가, 나중에 결혼 생활을 할 때 아내가 이런 논리를 늘어놓는다면 하, 아찔하다. 섣불리 태클했다간 나만 넘어질 테고. 이 소설은 끝없는 드리블로 결혼에 대한 당신의, 사회의 관념을 유린하고 농락한다. 소설 곳곳에 정갈하게 배치되어 등장하는 축구이야기와 일화의 인용은 타당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절대 손에서 책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한 경기의 축구 같은 소설이다.
애석하게도 필자의 이야기는 호나우두와 지단으로 끝났다. 그들은 정말로 좋은 선수들이지만 그라운드를 떠났고,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축구의 수비전술을 비웃기라도 하듯 포르투갈산, 아르헨티나산 괴물들이 계속해서 태어난다. 현실이다. 나는 정말 난감하다. 나중에 호날두와 메시의 드리블처럼 아내에게 당하고 싶지 않다면 미리 읽어라. 조금이라도 면역은 될 터이니. 진짜로 아내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면, 그때부터는 답이 없는 거다. 이미 늦었다.
2009년 4월 29일
싸구려 잡지에 소설 소개하는 글처럼 쓴 것 같아서 안타깝지만 소설의 재미를 흉내내려 해봤다.
감상문을 쓰고 나서
그동안 읽어봤던 비슷한 종류의, 요즘 나오는 많은 책들보다 재밌었다. 한 번 잡고 놓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끝까지 읽어낸 오랜만의 책이라 어쭙잖게 감상문을 써봤다. 책을 읽는 동안 한 사람이 떠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 읽고 나니 따뜻함을 얘기한 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멋진 사람들이다.

나도 떠나보면 너를 알게 될까. 그리고 나를 알게 될까.
어째서인지 이 책은 여행 서적 코너에 있었다. 아무래도 에세이보다는 여행 서적에 있어야 판매력이 좋기 때문인가. 일반적인 여행서적은 현재 시점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그러니까 최신의 정보를 담고 있고 현장감 있는 사진과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을 정도의 자료들을 제공하고, 여행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요즘 여행 서적 코너에 가보면 기행 형식의 에세이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책 역시 그런 것들의 범주에 속하지 않나 생각한다.
허나 이런 책들은 지극히 자전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다. 한 사람이 보고 느끼고 쓴 것을 독자가 일방적으로 읽는 방식인데, 때문인지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유명 연예인이나 시인, 사진가들의 책들이 주류를 이루지 않나 생각해본다. 더군다나 이런 에세이들의 좋지 않은 또 다른 공통점이 여행 정보에는 취약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차나 고생길보다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 구성이 여행의 밝은 모습만을 비추기 때문에 현혹되기가 쉽다. 제일 안타까운 것이, 여행 서적이랍시고 이런 책을 사는 사람들이다. 사진으로 본다면 대형 사진커뮤니티의 자료들이 더 도움이 될 것이고, 글로 굳이 따지자면 문학적으로 더 나은 에세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보는 앞서 말했듯 일반적인 여행 서적이 좀 더 객관적으로 여행자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도대체 뭔가?
"그래, 악마를 만나면 뭘 하려고요?"
"교차로에서 악마를 만나 영혼을 팔면 대신 다른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 어떤 능력을 당신 영혼과 바꾸려고요?"
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글쎄요. 저도 확실히 모르겠어요. 그저 뭔가 내가 갖지 못한 다른 능력을
가지고 싶어요. 예를 들면 끝내주는 블루스 연주 실력이라든가..."
그거 웃으며 내게 물었다.
"블루스 음악 좋아해요?"
"아니 뭐, 좋아하긴 하는데 잘 몰라요. 그냥 미시시피에 왔으니 그 교차로를 보고 싶은 것 뿐 이에요."
그가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러면 가 봐요. 뭔가 기대하는 게 있다면...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잖아요."
가물가물해서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옛날 로마의 어떤 여왕이 지루했던 성 안의 삶을 버리고 한참을 유랑하다가 죽으며 남긴 말이 '사람은 가장 일상적이고 단조로운 삶을 살 때 행복하다'라고 들었는데, 이 말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직접 자신의 삶을 바꾸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우리가 여행 서적도 아닌 이런 종류의 책을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로마의 여왕처럼 단조로운 일상을 탈피하거나, 책을 쓴 사람처럼, 여행을 하며 일탈을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책을 통한 일종의 대리만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김동영의 이 책은 그간 내가 읽어봤던 비슷한 종류의 책들보다 좀더 와 닿고, 뭐랄까, 어려운 말 쓰지 않는다면 '재밌다'.
하루하루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기에 참을 수 있었다.
통장의 잔고와 내일 출근할 일을 걱정하는 것이 나만이 아니기에
오늘도 걱정할 수 있었다.
감정의 낭비, 물질의 낭비를 삼가야겠다고 결심하면서도
나 혼자만 그렇게 살기엔 억울한 것 같아 그럴 수 있었다.
(중략)
하지만 남들은 쉽게 떠나지 못하더라도
지금 안 하면 평생 못할 것만 같기에 난 대차게 떠나기로 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의 카피문구보다 절실한 이유는 책에서 계속해서 알려주듯 '나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금 안하면 평생 못할 것만 같기에' 떠나는 김동영의 '깨끗한 처절함' 때문이다. 이 처절함은 일을 해서 월급을 받고, 여윳돈이 생기면 여행을 가는 것처럼 어떤 것에 대한 소비로서의 보상이 아니라, 자신을 찾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다.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걷기만 하는 우리를 대신해, 김동영은 철저히 자신의 힘으로 뒤돌아갔다.
그것은
내 인생 최고의 영광이었고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으며
한편으로 내 인생 최고의 낭비이기도 했다.
라고 쓰여진 머리말처럼. 정말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전 재산을 털어 미국에 날아가 230일 동안 버려진 국도로 대륙을 횡단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김동영의 말처럼 최고의 낭비이자, 어른들의 말처럼 '사서 고생'이다. 애석하게 김동영이 로마 여왕과 닮았기 때문일까. 낭비와 정신적인 방황,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을 믿었고, 자신을 믿은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고, 여행의 즐거움을 잊지 않으며 지독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또 성숙해진다.
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내가 말하던 방식대로가 아니라 제대로 말하는 법,
내가 먹는 것만 먹는 게 아니라 내가 먹을 수 없는 것까지 먹는 법,
그리고 옷을 개는 법, 자고 일어난 자리를 정리하는 법,
그리고 심지어 벌여놓은 짐을 다시 싸는 법까지 모든 걸 다시 배워야 했다.
나는 그동안 가방 안에 아무렇게나 쑤셔넣은 전선들처럼 엉망으로 엉켜 있었다.
여기서 짐을 풀 필요가 없다.
난 내일이면 또다시 다른 곳으로 떠날 테니까.
빨래를 할 필요도 없다. 다시 떠나기 전 옷이 마를 리 없으니까.
(중략)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으니까.
그러니 앞으로만, 앞으로만.
하지만 난 지금껏 취향 때문에 몇몇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다.
이해하기보단 부담스러워했다.
덮어주기보단 비아냥거렸다.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등을 돌려버렸다.
지금보다 더 유치하고 어리석었던 그 시절 때문에라도
이제는 내가 사랑할 사람들한테 내 취향을 짓밟힐 준비가 돼 있다.
당신은 영화를 좋아한다. 음악을 사랑한다. 사진으로 기억을 남긴다. 그렇다면 당신은 떠나야 한다. 몸으로 듣고, 보고, 느끼고, 또 직접 만들어야 한다.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여자가 싫어하는 남자의 고백을 거절했지만 걔가 날 좋아했다며 친구들에게는 몇 년이고 자랑할 방법이 생긴 것처럼, 김동영의 여행에서 만난 게이의 고백이 달콤하지는 않겠지만, 남길 수 있는 경험과 기억으로의 사진, 그것은 당신을 색칠하는 추억이다. 당신을 색칠하는 것은 입에서 나온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당신 앞에 펼쳐져있는 사건들일지도 모른다.
'어떤 풍경을 떠올리면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겠냐'는 다음 질문에
난 주저 없이 'Welcome to California'라고 쓰인
파란 간판이라고 대답하겠다.
그걸로 나의 여정이 끝났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 많은 풍경들에게 일일이 대답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 아름다운 길 위에 나를 못질해줘서,
또 나를 찬란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2차 성징기에 자아를 발견한다는 교과서적 이야기와는 정반대로, 사람들은 살면서도 자신을 잘 모른다. 건방지게 말해보면 그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쨌거나 막연하게 말하면 사람들은 살아간다. 누군가 창작을 했다면 누군가는 소비를 할 것이다. 음악을 들어도 좋고, 사진을 찍어도 좋다. 친구들과 함께 운동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내가 나를 쳐다볼 시간을, 우리는 약간이라도 할애하고 있는가. 물론 힘든 여행을 한다고 해서 나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동영 역시 이 괴로웠던 여정의 종점을 가장 아름답게 회고한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친절한 그의 말대로, 8개월의 목표 없는 긴 여정동안 아름다운 길 위에 못질 당하던 자신이 더욱 찬란해졌기 때문이다. 그가 하던 못질은 결국 자기 자신을 확고하게 다지는 망치질이 아니었을까. 혹시 당신도 저런 질문을 받는다면, 자신을 떠올렸을 때 가장 행복하게 미소 지을 수 있을까.
2009년 4월 6일
처음 써보는 축구 컬럼에 앞서서
나를 비롯해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때로 타인의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짧은 축구 동영상이나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고 열광한다. 개인에 따라서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공을 조금이라도 차본 사람이라면 그 플레이가 무엇인지 대략의 느낌은 이해할 것이다. 이런 화려한 플레이와 플레이 외적인 요소들 때문에 축구를 모르는 사람도 브라질의 로니(우리에겐 호나우도로 알려져있는)를 알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포르투갈의 로니(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스포츠뉴스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라운드를 거쳐간 이런 수많은 선수들은 모두 각기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호나우딩요의 그루브함, 호나우두의 역동성, 지단의 절제, 베컴의 화려함들이 그렇다. 인간이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이런 이미지들은 소통의 매개가 되는 사진이나 음악, 영화에서도 모티브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임팩트에 있어서는 스포츠만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 운동 자체를 싫어하거나 스포츠를 혐오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존중한다. 허나 동시에, 이런 이미지들을 수용할 수 없는 편협한 사고를 가진 것이 불쌍하다.
야구가 확률적인 텍스트라면 축구는 이미지에 가깝다. 지극히 순간적이며 진행에 휘발성을 가지기 때문에 경기 결과에 나온 수치를 토대로 양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야구와 달리 축구는 경기 전체를 보지 않으면 경기 내용이나 볼거리, 양팀의 우세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때로 축구를 야만적인 스포츠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그것도 그런 것이 규칙 자체도 아주 단순하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만들어낸 놀이가 점점 룰이 생겨 즐기는 것에 의의를 두기보다 이기기 위한 대결도구로 변질되면 아이들은 오히려 재미없어 하는데 축구의 규칙을 만든 사람도 그걸 의식했나보다.
따지고 보면 축구라는 스포츠는 큰 특성이라는게 없다. 필드를 머리, 가슴, 배로 나누듯 크게 나눠 서로의 위치를 바꿔 뛰어도 경기 규칙에는 전혀 관계가 없는 포워드, 미드필더, 딥필더, 골키퍼로 구성된 팀원들이 최소한의 규칙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플레이'를 다하는 운동이다. 공놀이에 가깝다. 앞서 말했듯 가끔 야구팬들이 축구를 야만적인 스포츠라고 비하하기도 하는데, 역으로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표출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운동이 바로 축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플레이'가 가능하려면(짧게 말하자면 공 안뺏기고 뛰다가 패스하고 골 넣으면 된다) 기본적으로 개인의 능력을 최대화 시키며 동시에 팀플레이를 극대화 시켜야한다. 얼마나 이상적인 말인가. 이런 플레이 과정에 축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각 포지션에서 최고의 선수가 탄생하고 그것은 곧 명문 구단에서 우승으로 이어진다. 이런 과정에선 경기 외적인 요소도 아주 중요하다.
오, 미안. 처음으로 쓰는 축구 컬럼에서 개인적인 감정에 대해 논하느라 서문이 길어졌는데, 나는 축구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느 축구팬들이 그렇듯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환타지스타 즉, 어떤 축구선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는 본격적으로 축구를 보기 시작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2002년 월드컵 때도 우리나라나 잘 한다는 브라질의 경기 외에는 TV를 잘 켜지 않았다. 응원을 하러 가거나 관람차 축구장에 가본 적도 없다.(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후회스러운 일들 중 하나다. 그런 내가 선수의 성적에 관계없이 요즘 눈여겨 보고 있는 선수가 있다면 바로 토트넘에 거액의 이적료를 선사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다.
189cm 키에 민첩한 체격을 가진 이 불가리아 출신의 공격수는 그라운드에서 축구만을 하는 것이 아닌듯 하다.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박지성의 노력과 끈기, 긱스의 예리함, 앙리의 파괴력도 아니고 축구라는 경기와 별로 관계가 없어보이는 '우아함'이다. 풀밭의 축구선수보다 무대 위의 발레리나에게나 어울릴법한 우아함. 불가리아라는 나라에 대한 막연한 무지만큼이나 이 선수의 알 듯 모를 듯한 플레이는 단순하게 우아함이라고 정의되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이 선수를 단정짓는 것에 반대한다.
(1) 특이한 베르바토프(?)
앞서 말했듯 그라운드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스타플레이어들은 사생활이나 그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데 현역 축구선수인 베르바토프는 때아닌 곳에서 주목과 때로는 야유을 받는다. 거액의 트레이드머니로 이적해 맨유의 평균 이하(?) 외모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지만 고급스러운 외모에 걸맞는 성격과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까탈스러운 플레이로 난데없이 팬들의 야유를 사기 시작한 것이다. 베컴이나 호날두가 더운 여름에도 항상 긴팔 운동복을 차려입는 간지와는 관계없이 유니폼 안에 스판 재질의 스펜덱스를 꼭 착용하기 때문은 결코 아니고, 그 이유는 단지 열심히 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네티즌 축구팬은 이것 때문에 '먹튀'라고 하기도 했다. 왜 600억이나 받으면서 미친듯 뛰지 않느냐는거다. 그럼 호날두는 1년 연봉이 1200억(?) 거품을 물고 뛰어도 모자를까.
베르바토프가 경기 중 선수와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유심히 지켜보면 재미난 것이 있다. 유니폼을 잡고 늘어진다거나 비신사적인 행위로 자신을 방해하는 파울을 당하면 심판이나 선수에게 직접적인 항의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짜증을 내며 발을 동동(?) 구른다. 심판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려는 다른 선수들과는 뭔가 다르다. 휘슬이 울려 경기가 멈추고 카메라가 공과 선수들이 몰린 쪽으로 따라갈 때 베르바토프는 구석에서 혼자 짜증스러운 제스쳐를 취한다. 왜서 심판의 날카로운 잣대가 나의 플레이에 적용되지 않느냐고, 경기를 보고 있냐고 한탄하는 것 같다.
특이한 점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경기를 보다보면 선수들의 강한 태클로 이어지는 슬라이딩 때문에 풀밭의 잔디에 의도하지 않은 철길(?)이 생기는 경우를 볼 수가 있는데 대부분의 선수는 신경쓰지 않는다.(특히 드록바의 철길은 그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프리킥을 차야할 위치이거나 또 비교적 주변 잔디에 신경쓸 시간이 있는 골키퍼가 아닌 다음에야 뽑힌 잔디를 제 자리에 박아넣는 선수는 흔치 않다. 하지만 웹에 떠도는 베르바토프의 모습엔 생명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그라운드에서 실천하기라도 하듯 진지하기까지 하다. 특이한 성격 때문에 선수 이력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던 져니맨 아넬카와는 다르다. 베르바토프의 커리어를 보면 알겠지만 라커룸을 많이 옮겨다닌 선수가 아니다.
이런 행동들을 보면 그의 성격을 약간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어시스트를 하거나 골을 넣을 때도 순간적인 상대의 실책이나 방심으로 인한 찬스를 획득하지 않은 이상은 밝게 웃으며 좋아하는 표정도 보기 힘들다. 거친 태클을 당해 지금이라도 죽을 듯한 표정을 지어 동료들과 관중들까지 걱정하게 만들다가 언제 그랬냐는듯 잘 뛰어다니는 선수가 있는가하면, 베르바토프는 숱하게 넘어져도 담담한 표정으로 옷이 더러워지는 것이 더 싫은듯 조용히 유니폼을 털고 일어나는 선수다.

(2) 천부적인 감각을 가진 베르바토프
베르바토프는 뛰어난 신체조건과 그에 걸맞는 천부적인 볼감각을 지니고 있다. 베르바토프의 트레이드 마크인 원터치트래핑과 세컨볼에서 발리슈팅의 정확도, 헤딩감각은 따라올 선수가 없다. 나는 적어도 순간적인 볼터치 감각에 있어 지금의 베르바토프와 견줄 수 있는 선수는 축구 역사를 뒤져봐도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페널티 박스 앞의 혼전 중 길게 날아온 공에 단 한 번의 터치로 상대팀에게는 위기를, 아군에게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선수가 바로 베르바토프다.
또한 08-09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웨스트햄 경기에 보여준 2번째 골의 어시스트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볼의 속도에 의한 정지상황을 완벽하게 예측해 골라인 바로 앞에서 키핑, 완벽한 밸런스를 보여주며 가속력을 최소화 시키는 동시에 해설자의 말처럼 'Lovely'한 턴 동작으로 이어 뒤따라오는 수비수를 "너의 움직임은 뒤에 달린 눈으로도 보여"라고 말하는듯 무력화시키고 그 후 골라인을 깎아내는듯 예리하게 파고들어 호날두의 태클이 밀려들어가는 위치에 정확히 공을 꽂아넣었다. 당연히 골은 골라인을 통과해 그물과 포옹했고, 차려진 밥을 맛있게 먹었을 뿐인 황정민처럼 호날두는 수비수와 함께 넘어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후 카메라에 잡힌 순간 속된 말로 벙 쪄있던 웨스트햄의 졸라 감독도 그랬을까. 축구팬들은 베르바토프의 이런 모습에서 전성기 지단의 움직임을 상기한다. (참고 http://video.cyworld.com/204134150)
'천부적'이라는 감각을 전제한 선수는 팀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단 한 번의 기회를 카운터 어택으로 바꾸고 때로 그 카운터 어택은 상대팀에게 어퍼컷으로 적중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 골은 팀원들과 그라운드의 분위기에 기여하고 때에 따라 경기 전반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두고 어떤 축구선수가 "클래스는 영원하다"라고 말했던가. 그래서인지 이적 초기에 맨유 팬들과 구단 스탭들의 대단한 기대를 안고 출발했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베르바토프는 주전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3) 베르바토프의 맨유 이적
07-08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머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라인은, 화려했지만 삐걱거렸던 바르셀로나의 판타스틱4(메시, 앙리, 호나우딩요, 에투)보다 훨씬 위협적이었다. 호날두-루니-테베즈-긱스의 쉴 새 없는 펀치에 리그 우승 경쟁자였던 첼시와 강력한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보였던 바르셀로나도 무너졌다. 다른 팀도 그렇지만 때에 따라 선수 전원이 공격수가 될 수 있고 위치를 바꾸어 뛰더라도 서로의 포지션을 잘 이해하고 그라운드를 누비던 맨유의 전방에 이번 시즌 베르바토프가 들어왔다. 이러한 선수 영입에 팬들은 최전방 골게터의 부재가 아쉬웠고, 과거 반 니스텔로이 같은 타겟형 스트라이커가 주축된 '킹 뤼트 시스템'과 같은 전술에 대한 퍼거슨의 애착이라고 해석했다.
08-09 시즌의 준비기간 동안 라모스 감독 체제 하에 거액을 투자해서 주축 선수의 방출과 뉴페이스 영입으로 팀을 전체적으로 재구성해 빅4(첼시-아스널-리버풀-맨유)의 아성을 넘보던 토트넘이었지만 베르바토프의 꿈에는 미치지 못하는 클럽이었던 것 같다. 끊임없는 맨유 이적설에 얽혔고 동시에 본인도 맨유에서 뛰고 싶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밝히며 그것이 이유가 되었을지는 미지수여도, 결국 베르바토프는 9번이라는 등번호를 받으며 맨유의 라커룸에 들어왔다. 과정만 놓고 보면 600억이 넘는 이적료와 프라이저 캠벨이라는 유망주를 받아낸 토트넘과 구단이 원하는 선수를 영입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자신의 꿈을 이룬 베르바토프 개인이 모두 만족하는 트레이드를 이루었다고 판단된다.
(4) 베르바토프의 플레이 변화
토트넘에서 뛰고 있을 당시 베르바토프는 로비 킨과 함께 최고의 듀오였다. 수비수 몇 명을 무력화 할 수 있는 볼키핑 능력을 가진 베르바토프와 아예 수비라인 자체를 흔들어놓는 킨의 적절한 공간침투로 이어지는 공격라인은 상대팀에게 날카로운 무기가 되었다. 항상 최전방의 위치에서 오프사이드 라인을 절묘하게 넘나들던 로비 킨의 계단은 베르바토프였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콤비로 활약했던 탓인지 리버풀로 이적해 페르난도 토레스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로비 킨의 요즘 모습은 베르바토프를 그리워하기라도 하듯 석연찮다.
이는 베르바토프도 마찬가지다. 완전한 타겟형 스트라이커라고 할 수 없지만 자기자리가 분명한 베르바토프가 결국 맨유의 키(Key)라고 할 수 있는 루니, 호날두와 어떤 조합을 보여줄지는 상당히 기대되었다. 아직은 실험단계라는 평을 받기도 하고, 혹자는 벌써부터 베르바토프가 거액의 이적료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깎아내리기도 한다.
지난 시즌 맨유는 위기상황에서 공격진도 1차적인 방어라인을 구축하고 역습 찬스에서는 선수 전원이 공격수가 되어 상대팀을 정신없게 만드는 유기적인 전술로 현대축구의 절정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중원에서의 볼다툼과 양질의 팀플레이로 패스를 전달해 전방의 루니-호날두로 이뤄진 공격라인에서 얻게 되는 골이 많았고 결국 07-08 시즌 맨유의 해결사는 루니와 호날두였다.
허나 루니-호날두-테베즈가 나서는 공격라인은 위협적이긴 하지만 항상 최전방에서 칼을 꺼내들고 있는 선수가 없기 때문에 가끔 견고한 수비벽에 부딪칠 때가 있었고, 특히 호날두라는 해법이 잘 풀리지 않는 경기에서는 공격루트를 변화시켜야만 했다. 게다가 08-09 시즌 초반 호날두가 부상을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컨디션은 좋지 않았고 긱스의 노쇄화, 부상으로 인한 스콜스의 공백, A매치에 참여해 좋은 경기결과를 보여줬지만 팀에 돌아와서는 골을 뽑아내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던 웨인 루니까지 더불어 맨유의 슬로우 스타터적인 모습은 정도가 심해지며 팬들의 걱정과 원성을 사게 만들었다. 하지만 부상에서 완전히 복귀한 박지성과 새로 맨유 유니폼을 입은 베르바토프를 투입하면서 맨유의 공격라인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전에는 페널티 박스로 진입하는 과정이 필드 중앙에서 받은 패스를 호날두나 루니의 개인 기량과 미들라인과의 팀플레이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지금은 최전방까지 진입하기 이전에 베르바토프라는 계단이 생겼다. 이적 당시 좋은 체격조건과 개인 능력, 공격수의 면모인 슈팅의 정확도까지 확보하고 있는 베르바토프가 전술의 꼭대기에 위치할 것이라는 팬들의 예상과 달리 볼을 가지고 있을 때 베르바토프의 모습은 스트라이커라기 보다 중원의 지휘자에 가까웠다. 자연스럽게 공격루트에서 베르바토프가 키핑을 하면 미들라인에 있던 호날두와 루니가 순간적으로 쇄도하며 윙포워드의 위치로 가는 횟수가 많아졌고, 시즌 극초반 팀플레이가 삐걱거릴 때를 제외하고는 서서히 먹혀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막 20R를 넘긴 지금 맨유가 달아오를 타이밍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기대된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맨유의 이런 '뉴커넥션'은 수비수가 몇 명씩 들러붙어 호날두와 루니만 틀어막으면 통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EPL팀 감독들의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박지성이 이전보다 패널티 라인에 진입하는 횟수가 많아지는 것은 베르바토프의 키핑을 통한 볼 배급이 뒤에 있는 긱스와 조금 더 전방에 위치했던 루니-호날두 때보다 조금 더 원활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드리블이 길고 공격의 색채가 짙었던 테베즈가 벤치에 앉는 시간이 길어지는 대신 공수전환과 팀플레이가 매끄럽고 활동폭이 매우 넓어 수비가담에 있어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박지성의 선발출장이 많아졌다고 해석해도 크게 틀림이 없어보인다. 일례로 얼마 전 있었던 스토크시티와의 경기 후 퍼거슨은 선발출장한 테베즈가 골을 넣기 전 박지성과 교체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베르바토프가 합세한 뉴커넥션은 기존 맨유의 키(Key) 루니와 호날두의 달리기에 힘을 보탠다. 그러면서도 공격수라는 자신의 본연을 잊지 않고 득점을 올렸고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하지 않는다는 일부 팬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괜찮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오프 더 볼 상황에서 베르바토프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면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하지 않는다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베르바토프는 볼이 골라인을 넘어가서 배수구에 빠지는 것을 봐야 뛰는 것을 멈추는 박지성과 테베즈에게 배울 점이 분명히 있다. 유로 2008 결승전에서 스페인의 포워드 페르난도 토레스는 필립 람의 끈질긴 추격과 레만 골키퍼의 압박에도 끝까지 볼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으며 만들어낸 한 골로 스페인을 우승 트로피에 올려놓았고, 얼마 전 박지성은 몸부림에 가까운 헤딩으로 공을 따내서 마이클 캐릭에게 어시스트의 기회를 주기도 했다. 물론 그라운드의 풀밭 위에서 두 발로 뛰며 직접 공을 보는 것과 위성중계로 관전을 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되는 것이 있고 안되는 것이 있다. 게다가 선수의 감각이 일반인들보다 못할 리는 결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선수가 유니폼을 잡고 당기고 심지어 찢어도 심판이 휘슬을 불기 전까지는 파울이 아니다. 본인의 개인적인 성격이 결국 팀플레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하며 팬들에게 조금 더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팬의 반응도, 또한 경기 성적도 더욱 좋아질 것이라 기대해본다. 뭐 나는 베르바토프의 이런 면모가 좋으니 테베즈처럼 악착같이 볼에 매달리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컬럼을 끝내며
다시 곱씹지만, 베르바토프에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뜨거움도, 디디에 드록바 같은 존재감도 없다. 천부적으로 볼에 대한 감각은 타고난 것 같으나 엄청난 노력 또한 결과로서 눈에 보이며, 소위 말하는 레전드의 반열에 오르기에도 이미 적은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리오넬 메시 같은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치켜세우기도 힘들다. 허나 이 선수가 보여주는 그라운드에서의 풍미는 수많은 선수들을 제압하고 나로 하여금 빨간 유니폼에 새겨진 9라는 숫자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남겨진 일련의 이미지들은 축구팬들의 마음 속에 어떤 레전드급 선수보다 오래 각인 될 것이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백작의 그라운드 스토리를 앞으로도 기대한다.
9. Dimitar Berbatov
International : Bulgaria
Position : Striker
200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8년 불가리아 올해의 선수
2006년-2008년 토튼햄 핫스퍼 FC
2005년 불가리아 올해의 선수
2004년 불가리아 올해의 선수
2000년-2006년 TSV 바이엘 04 레버쿠젠
2002년 불가리아 올해의 선수
2001년 UEFA컵 최고의 축구선수
1998년-2000년 CSKA 소피아
1998년 CSKA 소피아 입단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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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바토프 플레이 동영상
박민규 -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
2009년 1월 3일